<기획> 무리지면 이긴다?

운영자 | 2012.02.27 09:50 | 조회 435

당초에는 3이더니 이젠 6이다. 무리의 수가 커진 것이다. 24일 민주통합당 수정구 예비후보 6인이 6인 중 1인을 밀어주자는 단일화 합의를 발표한 것이 그것이다. 당초 권혁식·전석원·정기남 3인에 이상호, 임채철, 임정복 3인이 가세한 것이다. 권혁식·전석원·정기남 3인은 줄곧 3인 중 1인을 밀어주자는 단일화 행보를 해왔다.

 


6이 의미하는 것은 '반김태년'이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경험적 수준에서 보면 약자가 강자에게 대드는 방법 중 가장 흔한 것은 무리를 짓고, 무리의 수를 불려 대드는 것이니까. 때론 강자를 누를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런데 이들에게서 무리짓는 방법은 '세'라는 것이 전제다. 이들은 세가 부족해서 세를 불려 강자에게 대들어보자는 것이니까.

 

그러나 이런 세를 전제한 무리짓기 방법이 합당한가? 이 의문은 정치에서 관점과 행위의 유일한 담당자가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관련이 있다. 가령 국가가 사유하고 행위하는가? 국민이 사유하고 행위하는가? 가족이 사유하고 행위하는가? 정당이 사유하고 행위하는가? 세가 사유하고 행위하는가? 아니다. 이것들은 전혀 사유하지도 행위하지도 않는다.

 

이것들은 단지 어떤 공동행위의 일정한 방식을 고찰하기 위한 범주에 지나지 않다. 특정양식의 인간행위의 경과가 존재하는 한에서만 고찰대상이 되는 범주들이다. 요컨대 사후적으로만 인정되는 사회적 범주에 지나지 않다. 세만 하더라도 이들 6인이 각자 지닌 관점, 행위의 고유성이 없다면 있을 수 없는 모임, 힘에 불과하다.

 

국가, 국민, 가족, 정당, 세 따위로 정치를 바라보고 행위하는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 그렇다면 정치에서 관점과 행위의 유일한 담당자는 '개인'이라고 말해야 한다. 이 개인이란 것도 홀로 있는 개인, 원자적인 상태의 개인이 아니다. 제 생각과 제 행위의 고유성을 가진 개인, 곧 세상에 고유명을 걸고서 정치를 바라보고 행위하는 '단독자'(키에르케고르)다.

 

"그 사람이 있어 그 정치가 일어나고, 그 사람이 없어 그 정치가 사라진다(其人存則其政擧 其人亡則其政息)"(《中庸》)는 공자의 말은 이런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들 6인에게선 단독적인 무언가를 찾아볼 수 없다. 설령 6인 단일화 합의를 최종주자를 선정하려는 수고로 인정한다 해도 거기에 배거의 합리적인 기준과 순서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배거의 기준으로 제시하는 것은 투명한 경선이지만 술수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6인 단일화 합의는 공천 심사과정에서 수정구 예비후보가 4명으로 축소되었다는 한 지역언론의 보도에 화들짝 놀란 대응이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회와 최고위원회의 공천권 행사에 모종의 영향을 미치려는 집단적 대응 의도도 엿보인다.

 

배거의 순서에서도 중구난방이다. 김태년과 1등을 가려보겠다던 이상호가 어느 새 6인 단일화에 합류한 것은 앞뒤가 어긋난다. 그만큼 세도 시원치 않았다는 자백으로 들린다. 엉터리이긴 하지만 어쨌든 검증토론회를 제안했던 3인이 6인 단일화로 재출현한 것은 말바꾸기로 보인다. 나머지 2인도 매운 작은 고추의 맛은커녕 지분 나눠먹기 동참으로 보인다.

 

최근 통합진보당이 민주통합당에 중원구 야권단일후보 양보를 요구한 일을 두고 있을 수 없는 일,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희대의 정치야합이라고 비판했다. 민주통합당 수정구 예비후보 6인의 단일화 합의도 정치야합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이들에게선 인존정거(人存政擧)의 정치를 발견할 수 없다. 그럼 이들 앞에는 인망정식(人亡政息)이 대기 중 아닐까? /마인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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